대구와 경북을 아우르는 대경권의 밤은 조용히 깊어진다. 첫차가 다가오는 시간에 문 닫는 포장마차부터 스피커 볼륨을 낮춰 대화가 들리게 배려한 와인바까지, 이 지역은 의외로 ‘감성’에 진심인 술집이 많다. 서울식 유행을 서둘러 흉내 내지 않고, 골목의 시간과 사람 냄새를 조금 더 남기는 쪽에 가깝다. 몇 해 동안 출장과 취재, 사적인 술자리로 밤을 오래 보냈고, 그중 다시 가도 좋을 곳만 추렸다. 분위기만 좋다고 추천하지 않는다. 잔 안의 액체가 정직하고, 음악과 조명, 기물의 질감이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지, 초대한 사람이 체면을 잃지 않을지까지 따져봤다.
대구의 밤을 여는 자리 고르기
대구는 큰 도심권이 뚜렷하다. 동성로와 교동 시장 일대는 젊다. 종로와 달성공원 라인은 오래된 대구의 결이 남아 있다. 수성구 들안길은 식당 밀집지로, 식사 뒤 잔을 기울이기 좋다. 각각의 동선에 맞춰 술집을 고른다면 흘려보내는 시간이 줄고, 자연스럽게 밤이 길어질 것이다. 아래의 추천은 데이트, 소수의 대화, 조용한 회동, 혼술 등 장면별로 엮었지만, 장소 자체가 가진 뉘앙스를 먼저 떠올리며 읽어도 좋다.
조도와 여백, 와인 한 잔의 호흡
동성로에서 벗어나 조금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광고판이 줄고 걸음이 느려진다. 그 분위기를 잘 쓰는 와인바가 몇 있다. 대구의 와인바는 가격 대비 구성이 넉넉하고, 잔술 회전이 빠른 편이라 신선도가 좋다. 특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유리창 너머 보이는 조도와 음악의 템포를 살피자. 흥청거리는 곳은 빠르게 만족을 주지만 오래 못 버틴다.
수성못 근처에는 해외 내추럴 와인 라인업을 소품처럼 널어놓는 곳이 있다. 소형 냉장 쇼케이스에 생산자 정보가 손글씨로 붙어 있어, 잔을 고르며 대화 소재를 하나 더 얻는다. 안주는 절제돼 있지만 염도와 산이 와인에 맞춰 계산돼 있다. 예를 들어 오일 샤르퀴트 보드는 견과류를 과하게 쓰지 않아 레드의 타닌이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워킹게스트가 많은 주말보다는 수요일이나 목요일, 입구 가까운 하이테이블을 피하고 안쪽 낮은 좌석에 앉기를 권한다. 옆 테이블과의 거리감이 보장돼 목소리가 낮아진다.
반면 동성로 북쪽 끝, 젠틀한 스파클링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작은 바는 잔술로 크레망과 프랑치아코르타를 번갈아 올린다. 여기서는 첫 잔을 길게 즐기기보다 30분 안에 리필하는 편이 낫다. 탄산의 캐릭터가 살아 있을 때 안주와 짝을 맞추는 재미가 있다. 버터와 엔초비를 살짝 얹은 토스트가 인기가 높은데, 지방에 탄산이 부딪히며 입천장을 씻어주는 느낌이 좋다. 여기의 음악은 90년대 RnB와 다운템포가 중심, 저녁 8시 전후가 가장 안정적이다.
골목식당의 끝에 있는 사케와 이자카야
대구는 의외로 사케를 디테일하게 다루는 집이 많다. 일본 출장이 잦아진 세대가 사장님으로 돌아와 만든 결과다. 경산과 칠곡 방향으로도 괜찮은 이자카야가 흩어져 있지만, 접근성과 안정성에서 도심 쪽이 우세하다. 내가 즐겨 찾는 집은 메뉴가 많지 않다. 온도대별로 사케를 다루는 확실한 기준이 있고, 해산물보다 닭과 채소를 잘한다.
사케는 요리보다 온도 관리가 까다롭다. 냉장 보관의 일관성, 개봉 후 소진 속도, 잔의 형태에 따라 풍미가 많이 바뀐다. 좋은 집은 이 세 가지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예컨대 쥰마이다이긴조를 8도 안팎으로 잡고, 오마카세 코스로는 기름기 적은 생선 대신 닭 껍질 구이와 간장 베이스의 곤약을 낸다. 당도와 향이 올라와도 짠맛과 구수함이 균형을 잡아 지루하지 않다. 계절 한정 라벨이 들어오는 10월과 3월에 방문하면, 같은 잔술 가격으로 한 단계 위 품종을 만날 확률이 높다.
대화가 길어질 때는 토지국 같은 뜨끈한 국물을 하나 끼워 넣어라. 소주가 아닌 사케와도 잘 맞는다. 소금 간이 짙지 않고, 감칠의 길이가 짧아 사케 향을 덮지 않는다. 포만감을 조절하려면 튀김류는 한 접시만, 대신 닭꼬치의 부위를 나눠 주문하는 편이 낫다. 모둠 꼬치의 구성은 매번 바뀌니, 레버가 싱싱한 날은 주저 말고 추가하면 된다. 김이 올라오다 수증기가 꺼지는 속도를 보며, 두 번째 병을 고르는 타이밍을 잡으면 분위기가 더 부드럽게 이어진다.

칵테일, 과장 없이 정직한 한 잔
바텐더의 손놀림은 종종 연출이 된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화려함보다 정확함을 챙기는 바가 오래간다. 클래식 레시피를 기본으로, 계절 과일을 변주하는 정도의 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곳. 셰이킹의 템포가 빠르지 않고, 필터링을 두 번 이상 거쳐 질감을 통일하는 곳. 그곳이 내가 믿는 집이다.
동성로에서 10분가량 걸어 도착하는 한 바는 뉴욕식 로우파이 조명과 대리석 바탑이 좋은 균형을 만든다. 여기서는 사워 계열이 특히 좋다. 계란흰자를 쓰되 향을 올리려고 오렌지 블로섬 워터를 몇 방울 사용하는데, 향의 봉긋함이 과하지 않다. 냉장 보관한 유리컵을 꺼내 미리 레몬 껍질 오일을 닦아두는 습관 덕분에 첫 모금이 깨끗하게 떨어진다. 주말 밤에는 바석은 혼자나 둘이 앉기 좋고, 3명 이상이면 라운지 좌석을 예약하는 편이 낫다. 차분히 마실 생각이라면 7시 이전 입장, 이후에는 데이트 손님이 늘어 소음이 올라간다.
또 다른 바는 위스키의 볼륨이 좋다. 공연장과 가깝고, 공연 끝난 뒤 뮤지션들이 흘러들어와 새벽 공기가 달라진다. 가벼운 하이볼을 주문한다면, 탄산수의 온도를 먼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라. 냉장고 맨 뒤 칸의 탄산이 제일 차고, 얼음과 위스키의 비율을 낮춰도 충분한 타격감을 준다. 대구는 얼음 품질이 전반적으로 괜찮다. 정육면체만 고집하지 않고, 시가형 얼음도 종종 본다. 컵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만으로도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포장마차의 리듬과 국물의 온기
늦은 밤, 길바닥에 박힌 의자다리의 기울기가 하루의 무게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포장마차에서는 그런 순간을 억지로 연출하지 않는다. 소주가 익숙하고, 따끈한 국물에 파 송송, 냄비 뚜껑의 묵직한 소리가 간판인 집이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손님층이 바뀌는데, 비 오는 평일 밤이 가장 안정적이다.
달성공원 근처의 오래된 포장마차는 국물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소곱창 전골은 불 조절이 관건인데, 사장님이 버너 손잡이를 계속 잡고 수위를 조절한다. 이 집의 국물은 첫 국자보다 두 번째, 세 번째에 맛이 응축된다. 초반에 면이나 떡을 넣지 말고, 곱창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리면 국물의 균형이 무너질 틈이 없다. 술은 차갑게, 국물은 뜨겁게라는 원칙을 유지하면 밤의 속도가 망가지지 않는다. 빗방울 소리가 천막 위로 튕겨나오는 날, 옆자리의 웃음이 벽을 타고 넘어올 때, 마음이 느슨해진다.
교동 시장 끝자락에 있는 또 다른 포차는 부침개가 메인이다. 시장 특성상 기름이 새로워 산뜻한 향이 남는다. 동동주를 과하게 시키면 탄산이 죽어 텁텁해지니, 작은 병으로 나눠 마시는 편이 낫다. 익숙한 메뉴라고 방심하지 말고, 기름의 온도가 떨어지기 전에 먹는 속도로 주문을 쪼개자. 주인장의 손목이 피곤해지는 시간이 새벽 1시 이후다. 그 전에 주요 메뉴를 마무리해야 마지막 잔이 깔끔하다.
수성못, 산책과 잔 사이의 거리
수성못은 계절마다 표정이 다르다. 봄과 가을에는 산책하는 연인의 속도가 같고, 여름 밤에는 벌레 소리와 인근 카페의 잔 소리가 겹친다. 겨울이면 호숫가의 바람이 단단해져, 실내 자리를 더 찾게 된다. 이 호수 주변에는 재즈를 가볍게 트는 와인바와 낮에는 카페로 운영되는 비스트로 겸 바가 많다.
그중 한 곳은 낮에는 수플레 팬케이크로 줄을 세우지만, 밤이 되면 바텐더가 포지션을 바꾼다. 칵테일을 크게 강조하지 않지만, 글라스웨어와 과일 시럽의 균형이 좋다. 자몽 시럽을 수제로 만든다고 해서 종종 실패를 보지만, 이 집은 과육을 곱게 밸런싱해 쓴맛이 튀지 않는다. 물의 수분감과 술의 향이 엇갈릴 때 라이트 바디의 화이트 와인이 안전하다. 수성못에서는 와인 한 잔 뒤에 15분 정도 산책을 추천한다. 술의 향이 공기와 섞여 다시 입안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경북의 밤, 도시 밖의 고요를 마시는 법
대구에서 차로 40분만 벗어나도 경산, 영천, 구미, 포항 등 완전히 다른 리듬이 나온다. 경산은 대학가가 만들어내는 밝음, 영천은 포도와 와인의 도시라는 자부심, 구미는 산업도시의 건조함 위에 얹은 실용적 취향, 포항은 바다의 중심과 뒷골목의 온도 차. 같은 잔이라도 장소가 달라지면 맛이 달라진다.
영천에서는 소규모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주 2회 직접 가져오는 국산 와인을 잔술로 팔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모든 병이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특정 빈티지에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산도와 과실이 적당히 억제되고, 오크가 무겁지 않은 타입이 그렇다. 수입 와인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마시는 재미가 있다. 이럴 때는 안주를 단순하게 유지해야 한다. 김치나 강한 양념은 지워라. 잣과 올리브, 소금만 살짝 친 치즈 정도가 좋다. 비교는 혀보다 코가 먼저 한다. 향을 입에 넣기 전 두 번은 맡아라.
포항에서는 횟감이 주인공이다. 술은 조연이 된다. 사케를 차갑게 마시든, 소주를 얼음에 부딪히게 마시든, 결국 바다는 식감으로 말한다. 새벽까지 여는 하얀 등짝의 식당이 있는데, 새벽 1시에 들어가면 예약 없이도 자리가 난다. 산도 높은 사케를 한 병 주문하고, 생와사비를 따로 달라고 부탁하자. 회의 지방이 덜컹거리지 않고, 사케의 피니시가 깔끔해진다. 포항의 소금은 부드럽다. 굵은입자가 느리게 녹으며 감칠을 잇는다. 소금과 레몬만으로도 한 접시를 끝내는 밤이 있다.
구미는 달라붙는 정서가 적다. 바쁜 도시의 밤은 무심할수록 편하다. 그래서 칵테일 바가 깔끔하게 일을 한다. 실내 공기질 관리에 신경을 쓰는 곳이 많다. 공조가 잘 되면, 두 시간 앉아 있어도 머리가 무겁지 않다. 위스키 바에서 스페이사이드 라인을 권할 때가 많은데, 피트 향에 반응이 갈리는 자리에서는 안전하다. 자가 인퓨즈드 리큐르를 쓰며 달콤함을 줄인 하우스 칵테일도 괜찮다. 구미에서는 장식보다 레시피, 장식의 잎사귀가 멋을 더하는 대신 잔의 무게감이 일관되도록 한다.
데이트와 회동, 자리를 고르는 기준
분위기 좋은 술집을 고르는 일은 사실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다. 상대의 취향을 가늠할 수 없다면, 음악과 조도의 안정성을 우선 보자. 또 사장의 응대 스타일이 지나치게 적극적이면 첫 만남에 부담이다. 반대로 너무 무심하면 ‘우리를 내버려두는’ 분위기가 불친절로 읽힌다. 좋았던 자리는 딱 중간 어디쯤이었다. 주문을 마친 뒤에만 필요할 때 다가오고, 물과 얼음은 과하지 않게 채워준다.
대화가 목표라면 바석보다 테이블이 낫다. 바석은 바텐더와의 교감이 장점이지만, 초면의 대화에는 간섭이 될 수 있다. 의자 높이는 의외로 중요하다. 하이체어에 오래 앉으면 허리와 정강이가 피곤해진다. 2시간 이상 대화라면, 쿠션이 있는 낮은 의자를 잡자. 테이블의 마감도 체크 포인트다. 거친 원목은 글라스 바닥에 물자국이 남고, 손목에 닿는 감촉이 습하다. 밤의 농도가 올라갈수록 이런 작은 감각이 피로로 변한다.
혼술의 기술, 외롭지 않게 마시는 법
혼자 마시는 술은 가장 솔직하다. 메뉴를 고르고, 잔을 비우는 속도도 내 마음이다. 하지만 혼술이 어색한 사람이라면, 자리를 잘 고르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다. 입구 바로 옆은 드나드는 바람에 시선이 쏠린다. 바의 모서리, 혹은 주방이 보이는 자리에서 단촐하게 시작하자. 메뉴는 단백질 하나, 탄수화물 하나면 충분하다. 소음이 클수록 도수가 낮은 술을 고르고, 조용할수록 향이 풍부한 술을 고르라. 감각이 빛을 받는 면적이 좁아질수록 향이 잘 느껴진다.
혼술의 피로는 계산할 때 온다. 잔술 위주로 주문하면 총액이 생각보다 높아지는 집이 있다. 잔당 1만 2천에서 1만 8천 사이, 세 잔이면 주머니가 가벼워진다. 이럴 때는 초반 두 잔을 잔술로, 마지막 잔을 하프 보틀로 바꾸는 요령이 있다. 안주도 분량을 쪼개 주문하라. 남기면 맛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마감 시간을 미리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1시 라스트 오더라면 12시 20분쯤 마지막 잔을 주문해 여유 있게 마무리하자.
감성의 실체, 음악과 냄새
감성 있는 술집의 기준을 의외로 많은 이가 인테리어에서 찾는다. 하지만 장면을 결정하는 것은 음악과 냄새다. 지나치게 가벼운 합성 디퓨저 냄새는 술의 향과 충돌한다. 좋은 집은 주방과 홀이 나뉘어 있고, 환기가 자연스럽다. 음악은 볼륨이 아니라 편곡의 밀도로 판단한다. 스윙감이 있는 재즈나 70년대 소울, 혹은 템포를 제한한 로파이 훵크 정도가 무난하다. BPM이 높아지면 대화가 빨라지고, 술이 빨리 비어간다. 오늘의 목적이 취함이 아니라면, 템포가 낮은 플레일리스트가 안전하다.
잔의 림을 코에 대는 순간, 세제 냄새가 스치는 집도 피하라. 설거지의 헹굼이 서투른 신호다. 얼음에서 냉동고 냄새가 나면, 첫 잔은 물로 넘기고 두 번째 잔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장에게 조용히 말하면 대개는 얼음을 갈아준다. 손님이 지적하는 품질 관리는, 좋은 집일수록 고맙게 받는다.
예약과 대기, 스트레스를 줄이는 팁
골목 명소는 작은 좌석이 매력이다. 그만큼 대기가 잦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감성은 금방 지친다. 온라인 예약이 가능한 집이라도, 2인석과 3인석은 정책이 다르다. 전화로 좌석 형태를 확인하라. 좌석 회전이 빠른 집은 90분 룰을 가지고 있다. 이를 미리 알면 주문 순서를 조절할 수 있다. 대구 건마 첫 잔은 빠르게, 두 번째 잔은 잔술로, 마지막 잔은 도수가 낮은 술로 마무리하면 이탈이 쉽다. 계산을 미리 부탁해 마지막 잔을 들고 나오는 방식도 깔끔하다.
주말 피크를 피하고 싶다면 목요일 밤을 쓴다. 지역 직장인의 회식은 수요일에 몰리는 경향이 있고, 대학가는 금요일로 몰린다. 목요일에는 테이블 간격이 넓어지고, 바텐더의 컨디션이 좋다. 택시 수요도 덜해 귀가가 편해진다. 비 오는 날은 대부분의 집이 한산하다. 하지만 테라스 석은 제습 상태가 중요하니, 방수 쿠션을 비치한 집인지 확인하라.
예산과 가치, 한 잔의 가격을 읽는 법
대구 중심가 기준, 와인 잔술은 1만 2천에서 1만 8천, 병은 5만에서 9만대가 많다. 칵테일은 1만 3천에서 1만 8천, 하이볼은 1만 초중반. 사케는 300ml 니혼슈가 2만 중후반에서 시작해, 720ml가 6만에서 12만 사이에 고르게 분포한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와 맥주는 5천에서 6천, 안주는 1만 중반에서 2만 초반. 경북권은 전반적으로 10에서 15퍼센트 낮거나 비슷하다.
가격표에서 가치의 힌트를 찾으려면, 잔술 라인업의 설명이 구체적인지를 보라. 품종과 지역, 생산자 설명이 모호하고 ‘인기’라는 말만 반복된다면 회전율에 의존하는 집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설명이 지나치게 길면 초심자에게 불친절하다. 한두 줄로 포인트를 짚고, 추천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집이 편하다. 물, 빵, 기본 안주의 품질은 집의 성격을 드러낸다. 기본이 성의 있으면, 메인도 대체로 괜찮다.
지역별로 기억해 둘 작은 루트
대구 동성로: 저녁 식사 후 북성로 방향으로 10분 걸어 조용한 바를 하나 찍는다. 9시쯤 잔술 2잔, 10시 반에 국물 포차로 이동. 돌아오는 길에 카페가 문을 닫기 전 디카페인 한 잔으로 입안을 정리하면 다음 날이 가볍다.
수성못: 호수 한 바퀴의 3분의 1만 걷는다. 바람을 맞고 들어가 스파클링 한 잔. 분위기가 올랐다 싶으면, 라이트 레드로 전환해 한 잔 더. 다시 10분만 걷고 택시를 잡는다. 취기를 공기와 나눠 가지면 후회가 적다.
포항 구도심: 일찍 문 닫는 식당에서 9시 전에 회를 마친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걸어 사케 잔술을 하는 바에서 한 병을 나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는 1시 전에 끝내면,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한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향
- 조용한 대화를 최우선으로: 바석 대신 테이블, 음악 템포가 낮은 집, 잔술 위주로 2시간 이내 마무리. 첫 만남의 부담을 줄이기: 밝은 와인바에서 스파클링 한 잔 후 근거리 포차로 이동, 각 장소 60분 내 체류. 혼술의 안정감: 주방이 보이는 카운터, 도수 낮은 칵테일로 시작해 하이볼로 전환, 안주는 소량 두 번 주문. 밤 산책과 함께: 수성못이나 금호강 인근, 잔과 잔 사이에 10분 걸음 넣기, 라이트 와인 중심 구성. 새벽까지 여유롭게: 재즈 위주의 칵테일 바에서 시작, 국물 포차로 이동, 카페인의 낮은 티로 마무리.
마치고 난 뒤,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
좋은 밤은 오래 남는다. 대경의 술집들은 과장하지 않고, 손님이 스스로 밤의 속도를 정하게 돕는다. 결국 감성은 외부의 장치가 아니라, 같은 잔을 천천히 돌려가며 나누는 시선과 호흡에서 생긴다. 내게 대구의 밤이 그러했다. 다섯 잔이 아닌 두 잔으로 충분한 날이 있고, 화려한 레시피보다 단정한 셰이킹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맛있는 국물 앞에서 말이 줄어드는 밤도 있다.
언제 가도 좋을 집은 계절이 바뀌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조명은 과하지 않고, 음악은 대화를 밀어내지 않는다. 잔은 깨끗하고, 물은 미지근하지 않다. 가격은 합리적이고, 사장의 눈빛은 바쁘면서도 다정하다. 대경의 밤에서 이런 집을 두세 곳만 품어두면, 초대한 자리든 혼자 달래는 시간이든 후회가 없다. 다음 번에는 그 집의 어느 자리에 앉을지, 첫 잔으로 무엇을 고를지, 생각만으로도 일상이 조금 가벼워진다.